광복 75주년, 나아갈 25년이 중요하다

([ 해외문화홍보원 ], CC BY-SA)

광복절 75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 8월 15일 아침은 그동안 보기 힘들던 비 속에 시작되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8월 중순쯤이면 늘 보던 환한 날씨는 사라졌고, 서울에서는 광복절을 맞아 서울시와 중앙방역대책본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극우세력의 시위가 계속되었다. 급기야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 서울시와 경기도에 2주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언하고, 2주동안 서울과 경기지역을 벗어나지 말 것을 경고했다 ] .

광복절에 대한 의미 해석도 여전히 달랐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 이날 기념사에서 민족반역자 청산을 재강조하면서 “민족공동체의 숨을 옥죄어 온 친일반민족세력이 가져 온 거대한 절망을 무너트리느냐의 운명적 대전환 순간에 서 있다”고 말했다 ]. 그러나 이날 제주 기념식에서 이를 광복회 제주지부장이 대독하자, 광복을 축하해야 할 원희룡 지사는 [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았던 것이 죄는 아니다”며 행사를 망가트리는 발언을 했다 ]. 미통당도 여전히 [ “과거에만 매몰돼 사소한 것까지 다 찾아내면 과부하가 걸려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면서 이를 비판했다. 이들이 꾀하는 미래지향성과는 거리가 먼 발언들이다.

독립을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이번 75주년 광복절이 분열의 날이 된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그동안 신천지에 의해 퍼졌던 COVID-19를 이기고 월등한 경제보호와 확진자 보호를 이뤄내면서 타 국가보다 월등한 선전을 보였고, 급기야 OECD 국가 중 9위의 경제 규모를 가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개도국 자격을 포기하고 선진국으로 들어선 몇 달 만에 우리는 G7 참여 초청을 받았고 G7 확대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독일로부터 찬성을 받는 등 진정한 국격 상승의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언제라도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오늘 우리는 떠올린다. 3대 선거 대승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의 지속적인 공격이 지지율 폭락, 자유당의 재건이라는 결과를 불러일으켰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한 노력이 국가 파괴 노력으로 이름붙여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다시 빠지려고 하고 있다. 다시 ’75주년 건국절’을 기념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이 몇년 안에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사반세기를 맞아,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할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사람 한 두명에 무너지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형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다시 위기 앞에 서 있지만 이미 이뤄주신 구원과 기적은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기도와 행동에 나설 때이다.

[논평] 류호정 의원 논란, 한국사회 근본을 뒤집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 주시 주디의 2020 S/S 드레스 ] (홈페이지 캡처)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5일 국회 본의회에 등원하면서 원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세간이 시끄럽다. 민주시민 일각에서는 류호정 국회의원의 ‘복장불량’을 문제삼는 반면, 진보시민들은 오히려 이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주시 주디의 드레스를 대량으로 구입해 제품을 일시품절시키며 류 의원을 지지하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국회의원은 정장을 입는 것이 ‘정상’이었다. [ 지난 2003년 유시민 전 장관이 국회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된 뒤 정장이 아닌 흰색 면바지를 입었다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로 인해 선서를 못하게 된 이후 ] 국회의원의 기본적인 복장은 정장이었다.. [ 그러나 국회법 어디에도 국회의원 자체의 복장에 대한 규정은 없다 ]. 다만 국회법 25조에 품위유지 의무가 있는데, 품위라는 뜻이 [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우리말샘, CC BY-SA)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 위엄과 기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상’과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당연시되어 왔는지,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점검되고, 문제시되고, 재정의되어야 한다. 소위 이럴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TPO(시간, 장소, 상황)를 해석하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고, 일률적인 기준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이 문제시 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부터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저항에 불과하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허례허식과 군대 문화에 지나치게 익숙해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직까지는 독재의 역사와 그 독재의 물을 빼기 위한 역사로 구분이 기능하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기반한 논의가 이제 시작되려는 처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옷과 복장이 아직까지도 문제되는 것에 대해서는 재고할 때가 되었다. 더 나아가 ‘미통당’이 대선, 총선, 지선을 연달아 패배하고 나서야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싶다.

국회는 국민의 의견을 모아 한 국가가 나아갈 방안을 정하는 곳이다. 국민의 의견을 대의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지향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잘 대표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모두어서 최적의 대안을 찾아나간다는 의미지, 국민이 투표로 의원을 선출한 이후에 국민이 입법과정에 개입할 수 없고, 의회는 국민의 의견과 정반되는 결정을 내려도 선거로만 심판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수는 제헌헌법정신에 따라 최소 500석까지 많아져야 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과 함께 정당의 정책과 미등록 장애당사자를 포함한 장애인이 더 많이 국회의원이 되어 의사를 대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ㅍㅍㅅㅅ에서 류호정 의원을 비판하는 몸글을 기사화한 것은 오히려 비판할 일이다. 해당 글의 인용에 따르면 이 글은 국회가 [ ‘대한민국 주류들이 모이는 공간이자 가장 보수적인 공간 … ‘그 안에서의 형식’과 고리타분한 에티켓을 지켜야’ ] 한다고 주장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발언이다.

[ 새령이가 직접 소개하는 알법 우수사례 ]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는 법제처에서 최근 알법 사업을 추진하는 것부터 비판해주기 바란다. 무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공간’에서 만들어진 법률 ‘형식’과 ‘에티켓’을 정부 산하기관이 알아서 깨부시고 국민들이 알기 쉽게 만들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21대에 장애당사자들과 청년들이 ‘비례대표’로 대거 국회에 진출했는데 그것도 당연스럽게 비판하기 바란다. 가장 보수적인 공간에 대한민국 주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들어와서 ‘쌩난리’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

국회가 대의민주주의 기관이라는 신념을 관철하려면, 현재의 국회는 더욱 유연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진섭님께서 자신의 아들인 균도가 국회의원이 되는 날을 바란다고 말한 것 처럼, 소위 ‘중증발달장애인’이 국회의원이 되어도 불편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기관인 만큼, 그 기관을 존재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위협에 대한 대비 등은 이뤄져야만 한다. 하지만 권력의 주인인(헌법 1조 2항) 국민이 자신을 대의해야 할 국회에 가는 것이 꺼려지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국회의 유연화가 아직 부족하다는 근거 중 하나가 아직도 국민 대다수가 국회의사당 정문에 왜 출입이 불가능한지(참고로 이 내용은 <국회청사출입에 대한 내규>가 근거이다) 그 근거를 모르고 있고, 그리고 국회의사당 측면에 일반인 출입이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모르고 있다(국회 진정을 넣어 본 결과, 2014년부터 전면 안내실이 신설되어 정론관이나 미디어실쪽 진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 일선 언론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 [ 지금도 국민은 후문 안내실로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 보도 및 문제제기해 왔다).

류호정 의원 논란은 단순히 국회의원의 복장이 어때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국회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국회가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가와 직결되며, 그러한 다양성에 대한 위축 시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오래전부터 보수 정당들은 국회의 다양성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감축, 비례구 대표의원 폐지를 부르짖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류 의원의 행동을 비판한 사람들의 주축에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비판받아야 하는 일이다. 자유당과 검찰 등 더불어민주당을 파괴하고자 하는 공작이 반복되면서(그리고 지금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정치인물을 지켜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움직여왔다. 그리고 그러한 프레임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 바뀌어도 지속적가능한 민주주의인지, 한 사람이 죽으면 흔들리는 구식 정치인지에 대해 질문할 때가 왔다. 이제 제대로 따지고, 더 나은 옳음을 선택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