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당신은 좋은 영화입니까?”

자폐 장애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영화가 나오기 두 달 전의 일이었다. 자폐장애를 다룬 문화콘텐츠들이 늘 그렇듯이 자폐 당사자를 비하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에 걱정부터 됐다. 물론 배우 정우성님(양순호 역)과 김향기(임지우 역)님의 연기가 애초부터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기자’가 아니기에,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야 날짜를 잡아 문제의 영화를 시청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일반인들의 평점과 전문가들의 평점이 상반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의 논란이 될만큼의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꼬이는 스토리는 클라이막스에서 폭발한다

일반인의 관점만으로 생각하면 영화가 분명히 재미있었다. 자폐성 장애인을 우연히 만난 변호사가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가며, 대형 로펌으로 들어가서 ‘때가 묻은채’ 살아가려는 삶으로의 길을 진실로 파헤쳐 들어가면서 벗어나게 된다는 영화의 시나리오는 확실하게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선 스토리. ‘민변을 나와 권력층을 대변하는 대형 로펌으로 들어간 사람이 자폐 당사자를 통해 진실과 마주하고, 모순적인 권력 세계를 벗어난다’는 큰 흐름은 일단 그렇다고 치자. ‘민변’이라는 단어에 공산당을 보듯이 반응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슬픔을 더하기는 하지만, 이야기 흐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러나 영화의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살피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꼬이기 시작한다.

가장 이해가 안되는 지점은 1심 재판이다. 1심 과정은 양순호가 권력자의 편에 서며 ‘자폐 당사자가 복합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주며’ 임지우의 패(?)로 끝난다. 아니 그 사실도 관객은 알 수 없다. 임지우가 무엇을 증언했는지는 영화 끝부분에서나 나오기 때문이다(검찰 수사에서 해당 증언이 나왔는지의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이후에 무죄가 선고되고 나서부터의 전개도 너무나 갑작스럽다. 임지우의 어머니나 김희중 검사가 양순호의 변론에 화를 내는 것이나, 갑작스럽게 변론 직후 판결을 내리는 흐름이 전혀 이해가 안 갔었다.

특히 1심 재판 직후 만호의 반응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이 이뤄지는 것이 긍국적인 목표였다면, 해당 시점에서 만호가 미란이 무죄가 나왔다는 이유로 양순호의 회계법인 진출을 막았어야 했을까? 물론 이야기 흐름상으로는 양순호의 가치 추구가 이 시점에서 배반당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 이야기 전개가 결국 영화를 삐걱거리게 했다.

임지우가 갑작스럽게 2차 공판에 참석하겠다고 나서는 부분도 석연잖다. 순간 이 영화가 〈말아톤〉을 포함한 자폐 영화들의 패러디는 아닌지 눈을 의심하게 했다. 미란의 갑작스러운 협박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 변호사는 될 수 없지만 증인은 되겠다’는 ‘장애 극복의지’를 보여주는 임지우의 연기는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만큼 너무 의도적이었다.

결국 이러한 디테일들의 문제들이 2차 공판을 거치며 고칠 수 없을 정도로 고장난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김지우의 ‘증언’은 ‘신’이 되어 이야기를 끝장내고, 그렇게 갑자기 진범이 밝혀지고 나서는 모든 문제가 너무 순식간에 풀린다.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한 신혜의 역할이 후반부로 가며 사라지는 부분도 아쉬웠다. 결국 단순하고 모순적인 이야기를 포장하기 위해 자폐 특성을 사용한 것은 아닌지 궁금증이 들었다.

굳이 자폐를 그런 방식으로 표현했어야 했나

더 나아가 자폐 당사자의 시각에서 영화를 바라보자. 영화는 시작부터 현실로 가장된 비현실로 가득차 있다. 지우가 벌써 침대속으로 들어가야 했을 때 창 밖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순간부터 위화감을 느꼈다. 그렇게 두려움이 오는 상황에서, 꽤 오랫동안 창문 너머의 일들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자폐 당사자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기능 당사자들에게도 두려움이 ‘뛰어난 관찰력’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현실에서 성립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자폐인들에게 보여지는 일상생활이라는 유튜브 동영상과, 그 내용을 재현하겠다며 중간에 ‘임지우’의 시점이라며 법원을 ‘낯설게’ 표현해 놓은 부분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자폐성 장애인들이 저렇게 사는구나’고 생각하게 하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이야기다. 국내의 다수 고기능 당사자들이 보다 제한적인 감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폐 특성을 가진 당사자가 법률을 선호 특성으로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나는 변호사가 될래’ 라고 말하는 것도, 있을 수 없던 일들의 연속이던 ‘굿 닥터’ 이래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다. 물론 퀴즈를 다른 선호 특성보다 선호하는 자폐 당사자가 있다는 소문도 처음 들어봤다.

특히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임지우의 행동 자체들은 – 미리니름을 피하기 위해 언급은 피하겠으나 – 하나도 일상적인 자폐 당사자와 맞아 떨어지는 것들이 없다. 그러니 현실을 무시한 자폐에 대한 묘사는 임지우가 대표하고자 한 고기능 자폐 당사자가 모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 양 보여지게 할 수 있는데, 자폐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일상적인 오해와 차별 행동을 생각하면, 이러한 ‘극적 표현’이 오히려 자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될까 두렵다.

아, 그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양순호 변호사가 임지우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보고 실제 고기능 당사자들에게 그 방법을 쓰진 말긴 바란다(물론 일반 자폐 당사자들에게는 더 안 좋은 효과를 낸다).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양순호에게 소리를 지르고는 뛰어 도망갔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임지우가 저 상황에서 마음의 문을 연 게 더 이상하다.

좋은 연기와 영상이 나쁜 이야기를 덮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를 덮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자폐 당사자로 행동한 김향기님이다. 특히 김향기님의 연기에는 감사를 드리고 싶다. 화면 속 모습에서 김향기님의 모습은 눈을 굴리는 것이나, 말을 하는 방식이나 ‘정말 자폐 당사자랑 똑같다’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다(혹시나 김향기님과 estas가 만나게 된다면 동질감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을 위해 하트하트재단의 당사자들을 찾아가서 자폐처럼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희중 검사(이규형 분)의 존재 또한 이 영화를 이끌어주는 존재다. 일반인들은 자폐 당사자의 형이라 쉽게 증언을 이끌어냈다던가, 영화 끝 부분에서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만 주목하는데, 그것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김희중 검사라는 캐릭터 자체가 자폐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는 생각을 했다. 실제 여부는 모르겠지만, 각본을 쓴 분들이 미등록 자폐 당사자들을 이 이야기 속에 투영하기 위해 김희중을 만든 거라면,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영상미나 표현 방법에 대해서도 만족한다. 촬영이나 편집, 표현 모두 모자랄 데 없었다. 영상에서, 이야기만 떼어 놓고 생각하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것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그 표현은 결국 이야기와 불일치하며 무엇인가의 불편함을 일으킨다.

지우가 던졌던 질문을 영화 제작자에게 던지고 싶다. “당신은 좋은 영화입니까?”라고. 그 질문에 양순호의 말처럼 “이제부터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볼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그건 좋은 영화로서의 가치가 부족하기 때문일게다. 소문난 잔치에 배가 덜 불렀던 이유다.

평점
스토리 : 60점 | 연기 : 85점 | 연출 : 65점 | 종합점수 : 7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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